Quantcast
Channel: UNIST News Center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2847

4배체 유전자 개구리, 세계 최초로 해독한 과학자

$
0
0

권태준 UNIST 생명과학부 교수의 연구실은 마치 수산시장을 방불케 했다. 거대한 수조에 여러 마리의 개구리들이 나눠져 들어가 있었다. 물위에 둥둥 떠있는 개구리들은 마치 죽은 것 마냥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 죽은 건 아니겠죠?” 조심스레 묻자 권 교수는 “이래 보여도 실험실을 나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며 기자를 더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실험실 문에는 개구리의 탈출을 막는 장치까지 마련돼 있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4배체 동물에 도전하다

가자마자 마주한 개구리는 ‘아프리카발톱개구리’다. 태양이 작열하는 아프리카에서 살지만 20°C 정도의 차가운 물에서만 살 수 있다는 반전의 개구리는 권 교수의 트레이드 마크다. 세계 최초로 이 개구리의 유전체를 모두 해독해 2016년 네이처 10월 20일자 표지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7년 만의 성과로, 2009년부터 무려 7개국 6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4배체 유전자를 가진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모. | 사진: 아자스튜디오 이서연

4배체 유전자를 가진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모습. 권태준 교수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유전체를 해독하면서 실험동물로 촉망받고 있다. | 사진: 아자스튜디오 이서연

인간의 유전체를 모두 분석한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개구리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싶지만,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일반 동물과는 좀 다르다. 이 개구리는 ‘4배체’ 종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2n=46’으로 같은 염색체가 두 벌씩 있다(2배체).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염색체가 네 벌이다(유전자형이 4n). 식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지만, 동물에서는 아주 드물다.

“제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2009년은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기술이 막 유행하던 시기였어요. 남들 다 하는 인간 유전체 해독 말고,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4배체 종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 넘어 산, 쉽지 않았던 7년간의 공동연구

겁 없이 도전했지만 4배체 동물의 유전체를 해독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유전체를 해독할 때는 수십 개에서 100여 개에 이르는 짧은 염기 단위로 잘라(단위 염기서열) 각각 읽어낸 뒤 이를 이어 붙여 전체 유전자를 완성한다. 문제는 염색체의 80% 가량이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DNA 반복서열이라는 점이다. 반복서열이 많다 보니 단위 염기서열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4배체인 아프리카발톱개구리에서 이는 웃어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그때 돌파구가 됐던 것은 컴퓨터를 이용한 분석이었다. 권 교수는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서로 다른 2배체의 두 종이 합쳐지면서 4배체가 된 경우인데, 컴퓨터로 반복서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4배체를 이루기 전 두 종이 서로 다른 특징적인 반복 서열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정보를 이용해 4배체 유전체 지도를 정확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태준 교수가 아프리카발톱개구리 수조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 사진: 아자스튜디오 이서연

권태준 교수가 아프리카발톱개구리 수조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 사진: 아자스튜디오 이서연

7년이라는 기나긴 여정 동안 60명이 함께 연구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연구책임자(PI)들이 일 년에 한번씩 모이는 자리에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논문을 제출하겠다는 이야기만 5년을 했다. 핵심이 되는 데이터는 논문을 제출하기 2년 전쯤에 이미 나와 있었지만, 연구진들 사이에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웠다.

“염색체 이름 하나를 정하는 데에만 두 달이 걸렸습니다. 논문을 낸 뒤에도 수정하는 데에 또 네 달이 걸렸어요. 정말 쉽지 않았지만,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권 교수의 연구는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에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4배체 개구리는 진화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존재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두 개 있어야 할 염색체의 균형이 깨지면 세포가 죽거나 암과 같은 심각한 질환을 앓게 된다. 21번 염색체가 3개인 다운증후군도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프리카발톱개구리와 같은 원시 개구리류인 제노푸스(Xenopus) 속에는 염색체 수가 달라진 후에도 성공적으로 진화해 온 종이 여럿 있다. 많은 진화학자들이 왜 이런 특징을 보이는지 연구하고 싶었지만 그 동안은 적절한 모델이 없어 연구가 수월치 않았다.

권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다. 권 교수는 “정확한 유전체 지도가 밝혀졌으니,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구실 人사이드] 좋은 연구자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권 교수는 연구실에 들어오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생이 있으면 우선 연구자의 어두운 면부터 소개한다고 한다. ‘30살에 실직자가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교수 자리를 찾는 박사후연구원 수가 전체 교수의 수보다 많다’와 같은 말들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있지만 오해하지는 마시라. 그럼에도 연구를 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한 과정이다. 권 교수는 “실제로 연구하는 과정이 언제나 핑크빛은 아니”라며 “꾸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열정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 사진: 아자스튜디오 이서연

권태준 교수팀이 실험실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 사진: 아자스튜디오 이서연

권태준 교수는 학생들을 강하게 키운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봐야 안다’는 주의다. 권 교수는 박사과정 때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박사과정 중 잠깐 머물렀던 연구실이 그야말로 자유방임주의였는데, 그 곳에서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었다.

권 교수는 “처음에는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불편했지만, 결국은 내가 연구자가 되는 데 큰 성장동력이 됐다”며 “학생들에게 연구 방향이나 방법 등을 일일이 가르쳐줄 수도 있지만, 언젠가 연구를 책임지는 자리에 가게 됐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자세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연구실에 들어오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생이 있으면 우선 연구자의 어두운 면부터 소개한다고 한다. ‘30살에 실직자가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교수 자리를 찾는 박사후연구원 수가 전체 교수의 수보다 많다’와 같은 말들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있지만 오해하지는 마시라. 그럼에도 연구를 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한 과정이다. 권 교수는 “실제로 연구하는 과정이 언제나 핑크빛은 아니”라며 “꾸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열정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원 과학동아 기자 | jwchoi@donga.com

<본 기사는 2017년 1월 ‘과학동아’에 “4배체 유전자 개구리, 세계 최초로 해독한 과학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284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