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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번역은 너무나 창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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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러 스비스는 인터뷰나 강연을 통해 자신의 번역이 ‘창조적’이라고 주장해왔어요. 자구에 얽매여서 평가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번역에서 말하는 ‘창조성’은 원문에 충실한 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번역의 창조성’이 오역이나 졸역의 책임을 모면시켜주는 면죄부가 될 수 없어요.”

영문학자이자 번역가로 유명한 김욱동 기초과정부 교수가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의 영문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스미스의 번역에는 오역과 졸역이 많아 부적절하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내용의 논문은 미국 텍사스대 번역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저명한 학술지 ‘번역 리뷰(Translation Review)’ 3월 30일자로 실렸다.

한국어의 기본 어휘 습득 부족한국문화도 제대로 표현 못해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은 직후 영어판을 읽어봤어요. 그런데 번역이 엉망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곧바로 논문을 썼죠.”

‘채식주의자’는 작가 한강이 쓰고, 영국의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 영문으로 번역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이 작품으로 2016년 영국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특히 언어의 한계로 국제사회에서 덜 알려졌던 우리 문학의 우수성이 알려지는 계기로 평가돼 한국문학계에서 ‘채식주의자’가 가지는 의미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김욱동 교수는 일찌감치 ‘채식주의자’ 번역의 문제점을 알아챘다. 데버러 스미스가 한국의 어휘나 문화를 꼼꼼히 이해하지 못해 번역의 오류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우선 한국어의 기본 어휘조차 잘못 번역된 사례를 짚었다. 첫 번째로는 채식주의자 영문판에서는 ‘팔’과 ‘다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arms’라고 번역할 부분을 ‘feet’으로 번역하고, ‘feet’으로 써야할 부분엔 ‘arms’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 위에 매달아 놓은 장비를 뜻하는 ‘고가장비(高架裝備))’에서 고가(高架)의 한자어를 비싼 가격을 뜻하는 고가(高價)로 잘못 이해해 ‘expensive’로 번역하기도 했다. ‘아파트 앞 동’에서 동(棟)을 동쪽으로 오해해 ‘out east’로 써놓기도 했다. 한잣말의 동음이의어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사례다.

한국어나 한국문화 고유의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례도 많다. 주어를 착각해 잘못된 문장으로 풀이하거나 ‘처형(妻兄)’과 ‘처남(妻男)’을 혼동해 잘못 번역하는 식이다. 또 ‘한정식(韓定食))’의 개념을 오해해 ‘Korean-Chinese restaurant’로 써놓기도 했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영문판 표지 | 사진: 맨부커상 플리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영문판 표지 | 사진: 맨부커상 플리커

한국의 구어나 속어 표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된 장면도 있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하는 애가 또 펑크를 냈어요”라는 문장을 “The babysitter’s car got a flat tire”로 번역한 것이다.

이는 약속을 어겨 오지 않았다는 뜻을 가진 ‘펑크를 냈어요’라는 속어 표현을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고 잘못 풀이한 것이다. 또 소설 속 ‘아르바이트하는 애’는 화장품 매장의 점원인데 ‘babysitter’로 심각하게 오역했다.

번역은 의미를 명확히 전할 때에 비로소 창조적!”

김 교수는 이번 논문을 통해 ‘창조적 번역’의 개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원작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시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때에 창조적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 그는 “번역가의 영어 문체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원작과 거리가 멀어져서는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채식주의자’ 영문 번역에 관한 논란은 맨부커상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문학평론가와 학자들이 오역을 지적하는 글을 꾸준히 발표한 것이다. 한강 작가도 스미스가 오역한 부분 60여 개를 정리해 해외 출판사로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이런 실수가 작품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이 훌륭하다는 데에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맨부커상은 창작과 번역 두 분야에 수여하는 상이기 때문에 번역을 문제 삼을 것”이라며 “영문판에는 번역 오류가 너무 많아서 60여 개를 수정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개정보다는 완전히 새로 번역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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